[북부여사 기획1] 심각한 역사왜곡, 가족관계마저...
[북부여사 기획1] 심각한 역사왜곡, 가족관계마저...
▲ 사진1
[앵커]
한 출판사의 역사책입니다. 역사를 이야기로 풀어놓아 아이들에게 역사를 쉽게 가르치려는 부모들에게 인기가 많은데요. 하지만 역사책에서 나오는 사실 모두 믿을만한 사실로만 이루어져 있을까요? 박해랑기자.
[기자]
네, 박해랑 기자입니다.
[앵커]
가족관계까지 문제를 일으킨 역사책, 어떤 오류가 있습니까?
[기자]
네, 이 역사책을 보면 “해모수의 꾐에 빠져 사랑을 하게되었고 ~ 얼마후 알에서 사내아이(주몽)이 태어났다”라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역사책과 비슷하거나 동일하게 “주몽의 아버지는 해모수다.”라고 생각하실텐데요. 이 부분이 잘못되었습니다.
[앵커]
가족관계가 잘못되었다고요? 자세하게 설명해주시죠.
[기자]
다음에 제시된 그림은 북부여를 건국한 해모수단군의 가계도입니다.
다음 그림에서 보시다시피 해모수단군의 아들은 모수리단군과 고진, 즉 두 명의 자녀를 슬하에 두었는데요. 이 고진의 증손자가 고주몽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즉, 해모수단군은 주몽과 부자관계가 아니라 무려 고조할아버지와 고손자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앵커]
그림을 보다보니 의문이 생기는데요. 백제를 건국한 온조,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와 같이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에도 가계도가 보이는데요. 이는 어떻게 된 것인가요?
[기자]
주몽은 졸본으로 떠나기 전 예씨부인이라는 아내와 유리라는 아들이 있었는데요. 졸본으로 가면서 유리에게 부러뜨린 칼을 주며 “ 중에 나를 찾아오면 이 칼을 보이거라”는 말을 하고 이후에 유리가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에게 찾아가 칼자루를 보여주고 고구려의 2대 왕이 됩니다. 하지만 졸본으로 도착해서 주몽은 소서노와 결혼하고 비류와 온조라는 아들들을 두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위험할 것으로 생각한 두 형제는 남쪽으로 내려왔고 비류는 인천에 온조는 서울에 터를 잡고 나라를 세웠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백제의 시조인 온조는 주몽의 아들, 즉 해모수단군의 후손입니다. 그러면 신라의 시조는 어떻게 된 것일까요? 바로 후기북부여의 시작인 고두막단군의 딸인 과소가 남쪽으로 내려가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였다는 것입니다.
[앵커]
그러면 고구려, 백제, 신라를 세운 왕들이 모두 해모수단군의 후예라는 것입니까?
[기자]
네, 그렇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아이들이 올바른 역사를 접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박해랑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