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친숙하게 다가가야 할 독립운동가 신채호
여러분은 독립운동가라고 하면 누가 가장 먼저 떠오르세요? 안중근 의사부터 윤봉길 의사까지. 분명 유명하고 많은 분들이 계시지만 저는 오늘 이 분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전에서 태어나 독립운동가 뿐만 아니라 사학자, 언론인이셨던 단재 신채호 선생님을 꼭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단재 신채호는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의 문서부 간부로 활약을 하다 26살의 나이로 성균관 박사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박사직을 버리고 위암 장지연의 초빙으로 <황성신문> 논설기자로 입사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신채호는 언론을 통해 애국계몽운동에 앞장섰고 애국적 계몽논설과 사론, ‘독사신론’과 같은 역사물을 집필하였습니다. 또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신민회의 창립위원이기도 했습니다. 1911년에 가선 광복회를 조직하고 후엔 무장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신채호는 의열단의 조선혁명선언을 작성하고 민족사학을 연구하는 등 다양한 방면에서 다채로운 방법으로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가장 보여드리고 싶은 부분은 신채호 선생님의 여러 모습 중 민족사학을 연구하고 우리 역사를 집필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선생님은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역사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차이란 뜻입니다. 선생님은 역사를 높이 사 중국으로 넘어가서도 한국청년들의 민족교육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조선상고사’, ‘조선사연구초’를 집필하면서 국사연구에 공을 들이셨습니다.
한번쯤은 주위에서, 역사 교과서에서 들어본 이름인데 막상 어떤 일을 하셨는지 물어보면 정확히 모르는 분들이 많아서 아쉬웠습니다. 조금 더 친숙해지면 좋을 듯싶어 여러 독립운동가 중 신채호 선생님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신채호 선생님의 수많은 업적 가운데 역사 연구를 해 책을 집필하였다는 점을 널리 알리고 싶었습니다.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비록 제가 단재 신채호 한분을 가지고 글을 쓰지만 우리가 알게 모르게 독립운동가분들이 참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 시대를 살아가며 일본에 저항하고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무한한 희생을 하셨던 분들이 많았다는 점을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시간이 된다면 여러 독립 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담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인 ‘암살’, ‘밀정’, ‘동주’를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