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우리나라의 금속 활자로 만들어진 ‘직지심체요절’
아마 모든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는 것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게다가 그 이야기가 나와 관련된 이야기라서 더 생생하고 흥미진진하다면 이야기 속에 들어간 것처럼 재미있겠죠? 오늘 써 내려갈 이야기는 바로 우리나라의 역사 ‘직지심체요절’에 관한 내용입니다. 아마 우리나라 국민들이라면 알고 있지 않을까 싶은 내용이지만 혹시 모를 사람들과 더욱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글입니다. 한국사는 우리나라의 일이라서 현재 우리의 사회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나와 관련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나와 관련된 내용인 만큼 더욱 자세히 알아야겠죠?
가장 먼저 ‘직지심체요절’이란 무엇일까요? ‘직지심체요절’은 불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았던 고려 시대에 제작되었습니다. 여주 취암사에 머물던 백운 화상이란 승려가 부처님과 많은 고승들이 이야기한 법문과 경전 가운데 좋은 부분을 뽑아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란 책을 썼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직지심체요절’입니다. 이 중 직지심체란 ‘참선하여 사람의 마음을 바르게 볼 때, 그 마음의 본성이 곧 부처님의 마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라는 뜻입니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직지심체요절’은 총 상권과 하권인 두 권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하나는 목판 인쇄술이 사용된 목판본과 금속 활자로 만들어진 금속 활자본입니다. 여기서 목판 인쇄와 금속 활자의 차이가 있다면, 인쇄술의 시작인 목판 인쇄는 나무 판에 하나하나 글자를 새겼기 때문에 시간과 돈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새겨진 글자는 재활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불편함을 느껴 새롭게 만들어진 금속 활자는 글자 한 자 한 자를 만들어 놓고 필요한 글자를 맞추었기 때문에 필요할 때 언제든지 만들 수 있었고 시간과 돈이 적게 들고 편리하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러한 금속 활자로 만들어진 ‘직지심체요절’은 독일 사람 구텐베르크가 서양 최초로 금속 활자를 만든 15세기 중반보다 78여 년 빠른 14세기(고려 후기 1377년)에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직지심체요절’은 2001년에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그렇다면 지금 현재 ‘직지심체요절’은 우리나라에 있을까요? 현재는 ‘직지심체요절’의 하권만 남아있는데 지금은 우리나라에 있지만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우리나라가 아닌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의 소중한 문화재인 ‘직지심체요절’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가있었을까요? 구한말(대한제국/1879~1910) 우리나라는 프랑스와 외교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당시 프랑스 대표로 우리나라에 있던 외교관인 콜랭 드 플랑시 대리공사는 동양 문화에 관심이 많아, 우리나라의 책과 미술품 등을 사들여서 수집해 갔습니다. 이때 수집해 간 문화재 중에 ‘직지심체요절’이 포함되어 프랑스로 건너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1911년 고서 경매장에서 골동품 수집가였던 앙리 베베르가 사게 되었고, 그가 1950년에 세상을 떠나면서 그이 유언대로 ‘직지심체요절’을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기증하면서 중국과 일본 책 속에 파묻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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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직지심체요절’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면, 위에 말했던 구한말 때 빼앗긴 내용과 또 다르게 1866년에 프랑스가 선교사를 죽인 것을 이유로 조선의 강화도를 공격했던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가 수많은 우리나라 문화재를 빼앗았을 때 ‘직지심체요절’도 같이 빼앗겼다는 내용도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구한말 때 빼앗긴 내용이 사실입니다. 혹시 잘못 알고 있었거나 처음 보는 사람들은 병인양요 때가 아닌 구한말 때 빼앗긴 것으로 올바르게 알아두는 것이 좋습니다.
그럼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파묻혀 있던 ‘직지심체요절’을 어느 누가 찾아냈을까요?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있는 우리의 문화재인 ‘직지심체요절’을 찾아주신 감사한 분은 바로 ‘박병선 박사’님입니다. 박병선 박사님께서는 1967년부터 1980년까지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도서의 해’에 전시할 책을 고르기 위해 서고를 뒤지다가 ‘직지심체요절’을 발견했습니다. 박병선 박사님은 책의 내용을 보던 도중 마지막 장에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 활자로 인쇄된 책’이라는 내용을 발견하게 되었고, 1972년 드디어 ’직지심체요절’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유럽 사람들은 ‘직지심체요절’이 금속 활자 인쇄본이란 기록이 있어도 이를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유럽 사람들은 금속 활자 인쇄는 동양이 아닌 서양에서 시작되었다고 믿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박병선 박사님의 꾸준한 연구와 자료 수집 끝에 2001년에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에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외규장각 의궤 반환운동’이 일어났고, 2011년 6월 프랑스 정부로부터 145년 만에 대여형태로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대여형태라서 완벽하게 우리나라가 돌려받은 것은 아닌 5년 임대이지만 그래도 돌려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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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박병선 박사님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쯤 우리나라 소중한 문화재인 ‘직지심체요절’은 발견되지도 못한 채 역사 속으로 묻혀지고, 금속 활자 인쇄의 최초는 동양의 우리나라가 아닌 서양이 되었겠죠? 우리가 비록 박병선 박사님처럼 소중한 우리의 문화재를 발견하는 것은 힘들겠지만 우리나라의 문화재나 역사에 대해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작은 것부터 올바른 역사를 알아가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사실을 알아가는 정의로운 국민들이 많아질수록 올바르지 못한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올바르게 바꾸려는 국민들의 목소리도 더욱 높아질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역사는 올바르게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완벽하게 돌려받지 못한 ‘직지심체요절’을 포함한 외규장각 의궤도 돌려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