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랑군 평양說은 사실" VS "이동·교역 가능성 무시"
"낙랑군 평양說은 사실" VS "이동·교역 가능성 무시"..
'한국 상고사 쟁점: 왕검성·한군현' 토론회 2016.03.22
http://media.daum.net/culture/others/newsview?newsid=20160322203002585
22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20층 대회의실에서는 이 뜨거운 이슈를 정면으로 다루는 토론회가 열렸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주최한 ‘한국 상고사의 쟁점: 왕검성과 한군현’ 토론회가 그것으로 4편의 논문이 발표됐다 ...
복기대(인하대 융합고고학) 교수는 ‘한군현의 문헌기록과 고고학자료 비교’ 발표문에서 “유물 중심의 기존 고고학적 연구는 이동이나 교역의 가능성을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문헌기록으로 볼 때 한사군이 설립된 당시 위치는 분명히 현재 중국 허베이성 동북부와 랴오닝성 서남부”라며 “수·당 세력이 동쪽으로 확장하면서 중국 세력의 최동단에 있었던 낙랑도 점점 동진해 최후로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고 기록되기 이르렀고, 일본 학자들이 이 기록을 근거로 분명한 목적성을 가지고 평양설을 공고하게 다졌다”고 주장했다.
박성용(인하대 국제관계연구소) 박사는 군사학적 입장에서 당시 한나라의 위만조선 공격을 분석하고, “당시 한나라의 공격 목표가 평양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왕검성이 한반도 평양에 있지 않았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결론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