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일은 학생독립운동기념일
윤봉길 의사가 항일무장투쟁을 하기전, 그는 고향 예산에서 '부흥원'이라는 학교를 먼저 세웠었다.
야학원과 독서회를 만들고 <농민독본>을 저술하는 등 농민계몽운동을 통해 민족운동을 시작한것인데 그 계기가 된 사연이 참 기가 막히다.
어느날, 마을 청년 한 명이 지게에 묘비 팻말을 잔뜩 짊어지고 와서는 "내가 글을 모르니 내 아버지 묘 좀 찾아주소.."하더란다.
그것을 본 윤의사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 많은 묘의 묘표를 다 뽑아왔으니 이제 영영 주인을 못찾는 묘들이 되버린것이다.
이때부터 윤의사는 '우리가 나라를 잃은 것은 못배우고 무지해서'라 생각하고 독서와 교육을 통한 계몽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오늘은(11월3일) 윤의사가 무장항쟁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된 '광주학생항쟁'이 일어난지 꼭 86년째 되는 날이다.
‘한 사람의 무지는 무덤을 잃게 하는 적이지만, 민족의 무지는 나라를 잃게 하는 적이다.’ - 매헌 윤봉길.
◈11월 3일은 학생독립운동기념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212971&cid=40942&categoryId=32179
일제강점기 6·10만세사건과 광주학생운동 등 학생 독립운동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학생들에게 자율역량과 애국심을 함양시키는 한편, 반독재·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학생들의 얼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날이다.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났던 날을 기념해 매년 11월 3일에 행사를 개최한다.[네이버 지식백과]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의의
http://gsim.gen.go.kr/2006/?bo_table=0201
1920년대 초부터 서서히 시작된 학생들의 항일운동은 1929년 10월 30일 나주역에서 발생한 조선 여학생 희롱사건이 불씨가 되어 11월 3일의 항일 시위가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갔으며, 학생 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국민들이 일제히 일본의 폭력에 대항하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