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전에 올라온 문자(文字) 이야기에 대해서
오늘 오전에 올라온 문자(文字) 이야기에 대해서
고대 문명의 중요한 조건 중 하나가 문자의 사용입니다.
한반도와 만주 지역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의 고대 사회에서
일찍이 문자가 있었음이 확인되었지만, 우리는 정확하게 모르고 있습니다.
모르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배우지 않았으니까!!
그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이자방고전(而字倣古篆)
[세종실록] 25년 12월 조에 "이 달에 임금께서 언문 28자를 지으시니 그 글자는 옛 전서를 모방하였다.
둘째, 자형이자방고전, 용음합자 진반어고
(字形倣古之篆文, 用音合字 盡反於古)
[최만리의 상소문] "글자의 모습은 옛 전문을 모방했지만 음을 쓰는 것과 글자를 배합한 것은 다 옛것과 반대이다."
그럼 세종실록에 적혀있는 옛 전서는 무엇이고, 최만리의 상소문에 나오는 모방했다는 옛 전문은 어떤 것일까?
그 내용은 [태백일사]를 보면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환웅천황께서 또 다시 신지 혁덕에게 명하여 문자를 만들게 하셨다."
"환웅 대성존께서 하늘의 뜻을 받들어 (태백산으로) 내려 오신 뒤에 신지 혁덕에게 명하여 녹도문(鹿圖文)으로 기록하게 하셨다."
"태호복희씨 때 용서(龍書)가 있었다."라고 했고, "주양은 옛 문자를 기본으로 하여 처음으로 육서를 세상에 전하였다."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삼황오제 시대의 상고금문(上古金文)입니다.
최근 중국 곳곳에서 은나라 갑골문 이전의 문자들이 발굴되고 있는데, 이것을 집중 연구한 중국학자 낙빈기(駱賓基)는 자신의 저서 [금문신고(金文新攷)]에서 상고금문이 한민족의 언어를 바탕으로 만드러진 사실을 밝혀내고 그 문자를 만들어 사용한 주체가 한족(漢族)이 아니라 동방 조선족이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상고금문은 은나라의 갑골문(甲骨文), 주나라의 대전(大篆), 진나라의 소전(小篆)을 거쳐 한나라 때 한자(漢子)로 완성되었습니다.
[단군세기]에 보면 "가륵단군 재위 2년 경자(단기 153, BCE 2181)년, 이때 풍속이 일치하지 않고 지방마다 말이 서로 달랐다. 비록 상형(象形), 표의(表意)문자인 진서(眞書)가 있엇도 열 가구 정도 모인 말을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 많고, 땅이 백리가 되는 나라에서도 문자가 서로 이해되기 어려웠다. 이에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正音) 38자'를 짓게 하시니, 이것이 가림토(加臨土)이다."
이 가림토가 조선 세종 때 창제된 한글의 형태와 매우 흡사하고, 특히 모음 11자는 똑같은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단군조선 시대에 가림토라는 문자가 있었지만, BCE 8세기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 이후 한자가 동아시아의 공용 문자가 되었고, 가림토와 신지문자는 점차 한자를 보조하는 글로 사용되다가 잊히게 된겁니다.
한글의 모태인 가림토문자는 몽골, 만주, 서역 등 당시 단군조선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여러 지역에서 사용이 되었고, 일본에는 가림토 문자로 된 비석과 문서까지 남아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이를 신대(神代)문자 혹은 대마도 아히루 가문에서 처음 발견되었다고 해서 아히루 문자라 하여 매우 신성시 하고 있습니다.
또한 최만리의 상소문을 보면 "오직 몽골, 서하, 여진, 일본, 서번 등의 무리가 각기 그 문자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모두 이적(夷狄)의 일로 족히 도(道)라 할 수 없습니다." 라고 주장한 것은 당시 여러 지역에서 옛 전문을 모방한 문자가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문자들의 원형이 바로 가림토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