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낙랑유적 조사, '고대사 전쟁'의 씨앗으로 2016.04.05
1909년 낙랑유적 조사, '고대사 전쟁'의 씨앗으로 2016.04.05
http://media.daum.net/culture/others/newsview?newsid=20160405190613656
오늘날 낙랑군 논란은 20세기 초 세키노 다다시와 야쓰이 세이이치, 이마니시 류 등의 일본 학자들이 벌인 평양 일대의 낙랑계 무덤과 성벽 등 유적, 유물에 대한 고고학 조사 자료들이 텃밭이 되고 있다. 당시 일본 학자들은 이 유적들을 한나라가 지배한 낙랑군의 유산으로 기정사실화했고, 이런 견해가 오늘날도 국내 문헌사, 고고학계에서 대체로 정설로 수용되고 있다. 반면 국내 재야사학자들은 식민지배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한 왜곡과 조작을 자행했다며 일본 학자들의 조사 내용을 대부분 부정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