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와 한국의 길 (한국일보)
인도와 한국의 길 (한국일보)
인도의 대표적 국제 학술교류기관인 ‘인도국제문화교류원(ICCR)’이 주최한 학술대회에 참석했다. 그런데 학술회의의 주제가 가야 시조 김수로왕의 왕비인 허황후와 그녀의 모국인 아유타국에 관한 것이다. 한국고대사의 수수께끼는 많지만 허황후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관련된 이야기도 드물 것이다. 김수로왕과 허황후를 공통의 시조로 모시는 가락종친회만 700만에 이른다고 한다.
일연은 ‘삼국유사’에 ‘가락국기’를 실으면서 그 출처에 대해서 고려 문종 때인 대강(大康ㆍ1075~1084) 연간에 금관(金官) 주지사(知州事)의 문인(文人)이 지은 것을 요약해서 싣는다고 밝혔다.
서기 48년 허황후는 “바다 서남쪽에서부터 붉은 빛의 돛을 달고 붉은 기를 휘날리며 북쪽을 향하여” 와서 김수로왕의 왕비가 된다. 허황후는 자신의 출신국에 대해서 “저는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입니다. 성은 허(許)이고 이름은 황옥(黃玉)이며 나이는 열여섯 살입니다”라고 말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는 허황후가 본국에 있을 때 부모의 꿈에 상제(上帝)가 나타나 ‘공주를 가야에 시집보내라’고 명령해서 즉시 배를 타고 가야에 왔는데 약 2개월에 걸친 노정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 인도 북부의 아요디아를 ‘가락국기’의 아유타국으로 보는 견해가 적지 않은데, 과연 그러한지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우리 옛 선조들의 공간 개념, 즉 역사의 무대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광대했다는 사실은 신라 승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이 말해준다.
얼마 전 방한한 인도의 모디 총리는 ‘고대 인도 공주가 한국에 와서 김수로왕과 결혼했다’고 이야기했을 정도로 인도에서도 이 이야기가 퍼져나가는 중이다.